처음 그림을 그리겠다고 이젤을 펴고, 물감들을 짜놓은 파레트를 준비하고,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,
붓을 크기대로 일렬로 보기 좋게 눕혀놓고, 대작을 만들겠다는 눈빛으로 이젤 앞에 턱! 앉으면,
그 때부터 막막하다. 무엇을 그릴까?
‘지금부터 포트폴리오 시작!’ 한다고해서 하늘에서 주제가, 그림이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.
포트폴리오라는 타이틀을 굳이 붙이지 않더라도 많은 학생들이 처음에 흰 캔버스, 종이 앞에 앉으면
막상 '무엇을 그려한 하는지 모른다는 것에' 적지 않게 당황한다.
대부분 남학생들은 자화상으로 일단 시작하고 여학생들은 꿈을 많이 그렸다.
물론 이것은 나의 경험 일뿐이다.
이 학생‘S’의 경우도 처음에는 자화상만 주구장창 그려댔다. 기억하기로 한 열장은 그렸던 것 같다.
무엇을 그릴지 몰랐기 때문이다.
‘S’가 어느 날 사진 한 장을 들고 왔다. 이 곳은 어렸을 때 무서워서 밤에는 가지 못 했던 곳이라 했다.
그리고 그 사진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.
이 그림은 ‘S’찍은 사진과 매우 닮아 있지만 느낌은 많이 다르다.
그림은 그리는 사람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.
카메라의 후레쉬 때문에 심하게 밝아진 앞면과 그와 대비되게 어두운 뒷배경의 어슬렁거리는
소나무들은 그가 어릴 적 느꼈을 공포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.
‘S’는 드디어 자화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.
그림은 언제나 자신으로부터 나온다.